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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1회차 (Freedom from the Known -J.Krishnamurti)

출처 구글 검색 이미지

 

1. 책과 저자

1) 총평

2002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지만, 저자는 1890~1900년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2세기 전 사람이 썼음에도 2021년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관통하는 것을 보면. 몇 십년 뒤에는 논어나 채근담등과 같은 고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르겠다. 지식을 축적하고 사람들과의 공통된 대화주제를 갖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던 내게 "정신차려!"하며 돌멩이를 던지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하며 기꺼이 빌려주신 분에게도 총평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2) 저자 소개

저자는 인도의 바라문 가문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다른 계층들에 비해 부유하고 풍족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10형제들 가운데 질병과 기근으로 저자를 포함, 5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형제라고만 적혀있는데 혹시 자매는 없었던 것일까?) 크리슈나무르티의 어렸을 적 인도를 덮친 재앙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저자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불교에서 그러하듯 삶에 대한 통찰과 공부를 일찍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1920년대의 저자 사진이 남아있어 첨부한다. 진짜 잘생겼다..1920년에 이런 스타일이 가능했다고...?

 

출처 위키피디아

 

2. 감상

절대 한 번만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다. 1회차에 꼼꼼하게 읽었지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고승의 강의와 같아서 때론 혼나기도, 위로받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내 MBTI는 INTJ, TCI 기질검사에선 자극추구가 높은 사람으로 나왔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걸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란 나름대로의 과학적 반증인데, 책을 읽던 도중 아주 여러 번, 나와는 전혀 반대편의 주장을 펼치는 문장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때문에 오히려  '어떤 사물' 혹은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맹세컨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거지' 라며, 내가 아는 지식을 토대로 효율적인 삶을 살고, 공작이 꼬리를 펼쳐내듯 남들앞에서 내가 아는 주제가 나오면 뽐내고 싶다(지금도 그렇다.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뀌겠는가). 저자는 지식을 쌓는 것 자체가 나쁜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태어나면서 이미 '나'라는 좁은 틀 속에서 '특정한 문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우리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겠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단연코 지금도 많이 배우고 아는 것이 나쁜것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살아내야 하는 삶이, 사회가 가진 잣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안다'고 자부하는 모든 것들은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저 잡다한 수준으로 격하 되고 마는 실상이다. 상류사회와 문화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 ! 나는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너무나도 빠른 세상이다. MZ세대 중 한 명인 나 또한 단 반나절만 인터넷을 접하지 않으면 새로운 소식들이 수도 없이 쌓여있다.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 또 한 번 느낀다.

 

3. 책 속 인용

이 책에는 적당한 수의 북마크가 붙어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추려 초회차 북리뷰에 남기려 한다. 아무쪼록 이 책을 선택하려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을 따르지 않을 때 당신은 매우 외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워하라. 왜 외로움을 두려워하는가? 그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공허하고 무디고 바보스럽고 추하고 죄스럽고 불안하다는 사실, 즉 왜소하고 겉을 꾸미고 들은 풍월로 사는 존재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직시하라.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라. 도망치는 순간 두려움은 시작된다. 

 

당신은 자신이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심지어 나무를 보면서 "이건 참나무"라거나 "이건 보리수"라고 말할 때조차 그 나무의 명명(命名) ㅡ 이것은 식물학적 지식인데 ㅡ 이 자신의 마음을 너무 제약하는 나머지 당신이 그 나무를 진정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무와 접촉하려면 나무에 당신의 손을 대야 하는데, 말은 당신이 그것과 접촉하는 것을 돕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싶어한다. 사회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경할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대접받고 반면에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은 천대받는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어떤 지위를 원하고 또는 신(神)의 오른팔 위에 앉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지위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건 아무 지위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과 접촉을 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지적 능력을 발전시키게 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미술관과 연주회를 가고, 텔레비전을 보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오락을 즐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용하고 예술에 관해 많은 생각과 말을 한다. 왜 우리는 예술에 그다지도 의존하는 것일까? 그것은 도피의 한 형태이자 자극의 한 형태인가? 만일 당신이 자연과 직접 접촉한다면, 나는 새를 보고, 하늘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언덕 위의 그림자들을 보거나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면, 당신은 어떤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가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주위의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더 잘 보기 위한 자극을 얻으려고 약물에 의지하는 것이리라.

 

4. 내가 작가라면

무지한 중생의 입장에서 다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 적어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깊게 고찰에 빠지는 건 어려웠다. 왜그런가 생각을 해보았더니 저자의 말하는 방식이나 예를 들어 설명하는 표현들 모두가 지당하게 옳은 말들이지만, 어두컴컴한 방안에 이불뒤집어 쓰고 있는 필자에게 벨튀를 하고 간 듯한 느낌이랄까.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아주 빠르게 현실로 복귀해 버리는 순간들을 느꼈다.

 

그 이유는 책에 쓰여진 내용들이 콕콕 찌르듯이 자극을 주긴 하지만, 결정적인 해결책을 친절하게 제시해주지 않았고, '이 정도 말해줬으면 문제가 뭔지 알겠지? 잘 생각해봐~' 라는 느낌이어서, 그저 입벌리고 숟가락떠먹여 주길 바라며 앉아있는 나에게는 부족한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여러 번 책을 읽어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숙제같은 책이다.